거문도사건과 한반도 중립화론은
서로 관계된 사건인가요??
아니면 그냥 단순히 아무관련은 없고
거문도 사건이 일어난후 한반도 중립화론이 일어난건가요?
사실 거문도사건이 뭔지 중립화론이 뭔지 잘 모르겠네요ㅜ
흑흑....ㅜㅡㅜ
1884년 갑신정변 이후,
거문도사건과 한반도 중립화론이 일어납니다.
청의 내정간섭이 심했던 1884, 김옥균과 박영효, 홍영식 등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계기로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당시 청과 프랑스가 전쟁 중이라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일부 철수한 상태였고 일본 공사에 군사 지원을 약속 받은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암튼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3일 천하로 끝나게 됩니다. 갑신정변으로 조선이 얻은 건 없고 어랍쇼~오히려 일본에 배상금 지불과 일본 공사관 신축비를 부담해야되는 한성조약을 맺게되었습니다. -_-...이 좋은 기회를 놓칠리 없는 일본은 청과는 텐진조약을 맺어 앞으로 조선 파병시 상호 통보하고 청.일 양군 철수를 약속하죠.(이를통해 일본은 청나라를 견제할 수 있게된거죠.)
갑신정변 이후에 조선은 어땠을까요?
청의 내정간섭이 더 심해졌겠죠...? 조선은 이를 벗어나고자 러시아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러시아와 은밀히 조.러 밀약을 추진하려고 했으나~네, 실패합니다.
그런데 조선이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한다는 소식이 영국 귀에 들어갔고~ (영국은 혹시나 러시아가 조선으로 남하할까봐~) 거문도를 불법 점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거문도사건`입니다. (아니...어이가 없네...?)
핫 플레이스가 있다면 바로 여기 조선...여기저기 치고 들어오고 조선은 매우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때 독일 부영사 부들러와 우리나라 최초 일본, 미국 유학생인 유길준이 `한반도 중립화론`을 주장합니다. 그는 청을 중심으로 열강이 조선의 중립을 보장하며 독립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것이 조선이 살아남을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조선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