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종의 12목 설치한 이후 목사를 파견한 것이 고려 최초의 지방관 제도라고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태조의 사심관 제도도 아직 중앙과 지방의 지역이 조직화되기 전 각각의 마을?에 있는 호족?향리?들을 관리하기 위해 사심관을 파견한 것 아닌가요? 왜 태조의 사심관제도는 지방관 제도의 반열에 끼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심관은 지방에 파견시킨게 아닙니다.
사심관은 수도 개경으로 올라오구요, 사심관의 측근들이 지방에 남아서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관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지방행정조직이 정비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지방 행정조직이 아직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도 않은데 지방관이 존재할 수는 없죠.
지방관의 파견, 권한위임과 배분 등은 전부 `제도`가 정비된 이후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지방행정제도가 정비된 것은 성종 때부터죠.
그러니 사심관을 지방관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거 시험에 나온 건가요?
아~~ 그걸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군요 ...
그런데 그건 그런 의도도 그런 뜻도 아니랍니다.
단지 아직은 흩어져 있는 지방의 사람들이 왕이라는 사람을 잘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시대는 초기라서 왕의 권한이 약했데요.)
지방에서 가장 세력있고 그지역 사람들이 잘 따르는 관리를 가까운곳에서 지휘하고 감시하기 위한 제도 일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