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의 탕평정책
2020.03.29 비공개 조회 786

사건들과 암기법을 공유 부탁 드립니다..

말들이 뭐가그리 어려운지..

댓글 /1000
답변 2개
wil*****님의 답변입니다.
하수 채택 1 2020-04-03 00:17

이건 제가 암기하려고 개인적인 감정넣어 소설처럼 이야기 각색해서 외웠습니당.. 이거보시고 책 다시 읽어보세요!

멀리서부터 가볼게요.



일단 사림이 분열해서 <동인>과 vs <서인>이 있었어요. 동인이 우세했죠.



<동인>에 서경덕과 이황이 있었는데,

`서경덕`이랑 친분이 있던 `정여립`이 새왕조를 세우려고 역모를 준비하다가 발각되어 아들과 함께 자살합니다(1589_외우기 쉽게 십오15세아들팔8붙잡구9죽다니)


그래서 <서인>이었던 `정철`이 이를 빌미삼아 동인을 처벌받게 합니다. 동인을 한방 먹이죠.

근데 정철이 눈치가 없어요(?). 선조는 광해군보다는 자기가 총애하는 인빈김씨의 아들인 신성군을 왕세자로 책봉하고싶은데 광해군을 밀어줍니다.

건저(건의,왕저=왕세자)의 사건이죠.(왕세자 책봉논쟁으로 선조의 미움을 사서 처벌받게 된 눈치없는 서인 정철^^ .1591)


2년동안 서인에게 칼을 갈던 동인은 당연히 이때다 싶죠~~~  서인 처벌을 둘러싸고 파를 나눕니다.

서경덕은 당한게 있으니까 강경하게 처벌하자파 = 북인(북치듯패자)

이황은 온건하게 처벌하자파=남인



처음엔 온건파 남인이 정치계를 주도합니다.

근데 선조가 임진왜란1592 때문에 언제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일단 만만한 서자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하죠.


이때 북인이 광해군이랑 같이 명나라랑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하면서 전쟁 전후 복구사업을 추진합니다.

ㅠㅠ선조 프로 도망러, 광해군 뒷수습중=분조(왕의 대리인처럼수습)

임진왜란 때 도망다니면서 선조가 아끼던 인빈김씨 아들인 신성군은 죽었고,

선조는 일이 다 끝나가니까 광해군 폐위하고, 인목대비 아들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합니다.


광해군 빡쳐서 영창대군 죽이고 인목대비 유폐시켜요.

아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이면 어뜨캐...서인이랑 남인 놀라자빠짐....게다가 무리하게 토목공사를 강행해서 민심도 이탈합니다.ㅜㅜ

 


결국 광해군과 북인은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몰락합니다.. ㅃ2

<서인>이 인조반정 주도했지만 <남인> 일부랑 연합해서 몰락시킨거라 둘이 정국을 운영합니다.

서로 상호비판적이지만 공존체제 유지하면서 붕당정치 전개!!!

(일단 손잡은 남인과 서인)



광해군이 몰락했죠? 그다음 인조잖아요.. 인조가 선조가 아끼던!!인빈김씨의 또 다른 아들(=정원군)이 낳은 아들입니다. 징해요... 인빈김씨사랑

무튼 광해군의 조카`인조`..


인조는 아들이 두명있는데, 장남은 이미 죽었고

차남인 봉림세자(= 효종)이 사망해서 복제=상복을 얼마나 입을 건지에 대한 1차 논쟁이 일어납니다. 현종즉위


=> 1차 예송논쟁 =(일기) 1. 기해예송(1659. 오구오구 일단ㄱ해)

서인 : 차남이잖아 왕 적통성 부족하니까 1년만 상복입자. vs 남인 : 뭔소리야 왕이잖아 대우해 3년입어!!최대한 길게!! (남인이라 그런가 남한테 오지라퍼)

서인이 인조반정으로 공도 쌓았고, 수도 많고 우세해서 현종 때까지 서인이 세력이 커요. 1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이깁니다.


=> 2차 예송논쟁 = (두갑) 2. 갑인예송(1674. 남인의 7성4이다 보여줄게 )

두갑 예송 논쟁은 효종의 비가 죽어서 상복을 얼마나 입을 건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서인:차남의 비잖아!! 짧게해!! 1차에서도 짧게 입었잖아!! 9개월만 입어!! vs 남인 : 뭔소리야 저번부터 졸라 너무하네(빡침) 1년은 입어야지!!(오지라퍼)

꾸준히 세력을 키워온 <남인>이 드디어 칠성사이다를 보여줍니다. 2차 예송논쟁에서 <남인>이 이깁니다.



둘이 싸우고 난리 났는데 둘의 공존은 무슨..^^전쟁이죠. 숙종에 이르러 (1674즉위) 붕당정치형태 와르르 무너집니다.



남인의 칠성사이다 맛을 본 서인들 똥줄탑니다.


기세등등한 <남인> `허적`이 파티를 여는데 기름칠한 천막이 부족해요ㅜㅜ 황제가 쓰던 기름칠해진 좋은 천막 안쓰던거 쳐박혀있던데 일단 급하니까 그거 갖다가 씁니다^^(기름유, 천막 악)= 유악사건으로 숙종이 기분이 나쁜상태인데, 

똥줄타던 서인이 `허적`  아들 `허견`을 역모로 몰아 남인을 숙청하고 집권유지합니다. 

=>경신환국(숙종6년.1680. 80세 경들 역모 방법 써서(서인) 신났음 환장할 나라). <서인>이 권력을 다시 되찾아요.


경신환국의 결과로 신나게 남인 조졌으니까 처벌을 해야겠죠?

근데 남인의 처벌을 두고 <서인>들이 노장세력과 vs 신진세력간의 갈등이 생기면서 노론과 서론으로 분열합니다.

노장세력들=노론:송시열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때까지 받은 치욕이 있는데 당연히 강경하게 처벌하자. 강경론자

신진세력들=소론: 윤증은 온건론자 



근데, 가만히 있을 남인이 아니죠^^ 역모누명 쓰고 처벌받았는데

1689.구년동안 이를 갈다가 때가 왔습니다. 남(인)기사회생!!!!

기사환국 =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세자로 정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서민:서인은 민씨파=인현왕후)들이 축출되고

<남인>(남장:남인은 장희빈파)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이때 <서인> 노론:송시열꼬부랑 할아버지가 정읍에서 사사(임금이내린독약먹고스스로die)해요....



1694.장희빈이 폐비민씨 괴롭힌걸 눈치깐 숙종은 장희빈파<남인>이 꼴보기가 싫어지죠.. 권력상실시켜요.

다시 <서인> 노론과 소론이 집권합니다. =갑술환국 <서인> 권력 장악. (서서(서인) 갑자기 술마시고 권력잡은 서인 = 갑술환국 서인)


갑술환국 이후에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남인>은 아예 밀려났고

경종 왕위계승문제, 영조의 대리청정 문제 등으로 노론vs소론 대립이 격화됩니다.




1차 기해예송(서인 승)->2차 갑인예송(남인 승)->붕당정치 와르르:숙종 즉위하면서 특정붕당이 정권 독점= 일당전제화(한개의당이독점) 추세

경신환국(서인 승_노론소론분열)->기사환국(남인 승)->갑술환국(서인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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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정치가 한쪽의 편을 들지않고 사심없고 당을 이루지 않는상태가 탕평론이죠.

숙종이 정치적 균형관계를 재정립하려고 탕평론 제시를 했는데, 


경신환국 남인- 역모니까 <서인>편든건 인정ㅇㅋ 근데,

기사환국 으로 장희빈 아들을 세자로 하려고 <남인>편들고,

갑술환국 으로 <서인>편들고...돌아온 서인은 노론vs소론 대립이 점점 깊어져만 가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탕평책은 무슨~~결국은 <서인으로 시작해서 서인으로 끝났고 노론vs소론을 남겼다^^..숙종.>



소론이 지지한 경종은 일찍 죽어요. 그리고 숙종과 무수리 출신 숙빈의 아들,연잉군=

영조가 이런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 잡으려고 노론과 소론을 번갈아 등용시켰는데 오히려 정국을 더욱 어지럽게 하죠. (노론지지 영조)

빡친 소론과 남인 일부 강경파가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계되었다 하면서 영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노론과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한

반란이 이인좌의 난입니다.

이인좌의 난으로 정신차린 영조는 새로운 파를 만들어요=`탕평파`를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합니다. =>온건탕평


영조의 손자 정조는 더더욱 강력한 적극적인 탕평책을 추진합니다=>준론탕평

붕당의 입장을 떠나 능력있는 사람을 중용시켜서 왕권강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군무원준비생탈출성공님의 답변입니다.
고수 채택 344 2020-03-29 17:50

숙종 때, 붕당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던 붕당정치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정국이 급격하게 바뀝니다.

숙종에 의해 탕평책이 처음 시행되었는데,

군왕과 신하가 한 마음이 되서 인사관리를 공정하게 하면 붕당사이 갈들이 자연스럽게 없어질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했습니다.

근데 균형의 원리가 잘 지켜지지 않아서, 한당파를 몰아내고, 상대파가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파적인 인사관리를 해버린거죠..

그래서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이 일어났습니다.


동대문쪽에 살던 김효원을 중심으로 신진세력 강경파인 동인과 서대문쪽에 살던 심의겸을 중심으로 친 훈구파 온건파 서인이 대립합니다.

동인은 서인을 강경하게 처리하자는 북인과, 그래도 강경하게 하는 것은 좀~하던 남인으로 나뉘고,

서인은 남인을 강경하게 처리하자는 노론과, 그래도 강경하게 하는 것은 쫌... 하던 소론으로 나뉩니다.